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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인류의 삶을 비춰온 거울 Mirror & Looking Glass
제목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인류의 삶을 비춰온 거울 Mirror & Looking Glass
작성자 안나프레즈 (ip:221.163.31.240)
  • 작성일 2011-01-19 12: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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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인류의 삶을 비춰온 거울 Mirror & Looking Glass

명경지수로부터 시작된 거울

맑고 흔들림 없는 물을 가리켜 명경지수(明鏡止水)라고 한다. 이는 춘추시대, 공자가 학문과 덕으로 이름 높았던 노(魯)나라 학자 왕태를 두고 “마음이 조용해 사람들이 거울 대신 비쳐볼 수 있는 물”이라고 일컬은 데서 비롯됐다.

서양에서는 나르키소스가 명경지수의 연장에 있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입을 맞추려다가 그것이 자신의 반사된 모습인 것을 알아차린 나르키소스는 슬픔에 빠져 자살을 한다. 그 죽은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는 서양의 물거울 스토리는 애절하다.

이렇듯 거울은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곁에서 애환을 함께 해왔다. 거울의 기원에 대해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금속기시대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집트에서는 고왕국시대의 분묘에서 거울이 발굴된 바 있다.

특히 그리스에서는 상아 자루가 달린 둥근 거울이 만들어졌으며 헬레니즘과 그레코로만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하고 좋은 거울을 많이 만들어 냈다. 거울의 면이 원형인 손잡이거울이 많았으며 손잡이는 금속이나 목재, 상아 등을 이용해 신상이나 파피루스, 연꽃들을 조각한 것이 흔했다.

로마시대에 이르면 사치 풍조를 반영해 호화로운 장식의 거울들이 나타난다. 특히 상류층에서는 은(銀)거울도 사용했다. 당시 은 소재는 상당히 비싼 귀금속으로서 얼굴을 비추는 기능뿐 아니라 높은 가치로 예술품이나 재보(財寶)로 간주됐다.

이슬람 문양의 아라베스크에 영향을 받은 독특한 프레임의 스페인 거울

중세에 이르면 귀족계급의 용품을 제외하고는 그 시대상이 반영되며 검소해졌다. 갈아서 광을 낸 금속 조각을 나무나 상아의 작은 곽, 또는 빗의 일부에 끼운 것 등 휴대하기 편리한 것이 나타났으며, 특히 귀부인들이 기사 이야기 등을 부조한 상아 뚜껑이 달린 거울을 애장품으로 사용했다.

유럽에서 본격적인 유리 거울은 12~13세기경부터 서서히 나타난다. 특히 1373년에는 뉘른베르크에서 유리 거울 장인들의 길드가 결성될 정도였으며 르네상스시대에 유리 제작의 중심이었던 베네치아에서는 유리 뒷면에 주석박(朱錫箔)을 붙이는 방법이 발명돼 16~17세기에 금속거울 대신 전 유럽에 보급되기에 이른다.

19세기 독일 드레스덴 포슬레인 프레임으로 에나멜과 길트 장식을 한 포리크롬 거울

이 두 도시는 거울 제작의 경쟁 도시였는데 맑고 투명한 표면의 품질을 유지한 베네치아가 월등한 인기를 얻었다. 당시 도시를 그린 동판화에도 나와 있거니와 산마르코 광장 맞은편에 위치한 플로이안 카페 건너 건물 코너에는 매우 큰 규모의 유리 숍이 있었으며 특히 유럽 전역에서 거울을 사러 천 리 길을 마다 않고 달려온 귀부인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거울 가격은 같은 크기의 거장의 그림, 예컨대 라파엘로 그림의 3~4배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거울은 도넛처럼 만들어진 거울로서 지금의 거울과는 차이가 있다. 본격적인 거울의 등장은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를 건설하면서 나타난다.

당시 많은 기술자를 초청했는데, 특히 베네치아에서 옮겨간 유리 장인들에 의해 거울의 제조법도 전해졌으며 판유리를 발명함으로써 본격적인 거울 제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를 반영해 프랑스에서 대형 거울을 제작하는 혁신적 공법으로 베르사이유 궁을 상징하는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바로크 및 로코코시대를 통해 유럽은 내벽에 거울을 붙이는 풍습이 유행함에 따라 프랑스의 거울은 질과 양 모두 이탈리아 제품을 압도하게 된다.


1. 베네치안 글라스의 벽 거울로 방패 문장을 모티브로 했다.
2. 미국의 스털링 실버 손거울로 뒷면에는 아름다운 장식과 함께 소유자의 모노그램이 새겨졌다.
3. 아르누보시대의 스털링 실버 핸드 미러
4. 18세기 더치 실버 드레싱 테이블 거울
5. 베네치안 거울로 아프리카 모티브의 프레임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패브릭 모티브 방식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유리 거울

위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유리 거울의 애호가였으며 이를 통해 그의 예술작업의 영감을 얻게 됐다는 것은 재미있다. 그는 어떻게, 왜 유리 거울에 그토록 관심을 기울인 것일까. 유리 거울은 고대 로마시대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이 유리 거울이 실용화된 것은 13세기에 이르러서다.
 
물론 베네치아가 가장 좋은 거울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형 볼록 거울을 만들고 있었던 곳은 독일의 누렌버그였다. 거울의 도금 기술은 누렌버그가, 평면거울은 베네치아가 특기를 지니고 경쟁하고 있었다.
 
당시의 거울은 그 가치가 워낙 높아서 귀족들 중에서도 여유가 있는 제한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여하튼 이상하게 상류층 부인들이 거울을 좋아해서 독일로 베네치아로 거울을 사려고 몰려갔다.


1. 노년의 피터 폴 루벤스(1577~1640)는 16세 소녀 헬레네 푸르메와 결혼한다. 티티안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에 매혹된 루벤스는 푸르메를 모델로 ‘거울 앞의 비너스’를 그렸다.

2. 1841년, 덴마크 화가 C. W. 에커스버그의 ‘거울 앞에 앉은 여인상’은 벽 거울을 통해 여인의 얼굴 일부가 비친다.

3. 거울을 이용해 그린 것으로 유명한 다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독점적 위치에 있었던 베네치아의 거울 가격은 항상 일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조종이 가능해 베네치아가 거울만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상당한 국가 재원이 되고 있었다. 천재 화가이자 발명가이며 과학자이기도 했던 다빈치는 밀라노가 전화(戰禍)에 휘말리자 후원자를 잃고 밀라노를 떠나 피렌체의 군주인 메디치가(家)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그리고는 로마에 머무르면서 비밀 연구에 몰두한다. 그것은 유리 거울을 이용한 모종의 비밀 프로젝트였다.

당시는 이탈리아 반도가 프랑스와 스페인 등의 각축장으로서 혹은 도시국가들 간의 충돌로 늘 긴장하던 때였다. 물론 도시가 발달하고 예술이 꽃피는 시기이긴 하지만 군주들의 입장에서는 도시의 안전을 위해 전쟁을 예비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한 가운데 발명가이기도 한 다빈치와 군주와의 비밀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강력한 신무기 개발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유리 거울로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거울과 관련해 한 가지 전설을 기억해 낼 수가 있다. 로마군의 함대에 포위돼 궁지에 몰린 프톨레마이오스왕을 위해 아르키메데스가 황금으로 거울을 만들어 등대에 설치한 후 쳐들어오는 로마 갈리온 선(船)을 태워 버렸다고 하는 무용담이다. 즉 집광(集光) 병기인 것이다. 우리가 렌즈를 가지고 햇볕을 모아 종이나 낙엽 등을 태우는 실험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빈치는 당시 여러 가지 무기 체계를 개발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러한 거울을 이용한 병기 개발에 관여했을 개연성이 크다. 아르키메데스나 다빈치가 거울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서로 비슷하다.

솔로몬이 사막의 전투에서 청동 방패를 빛나도록 연마해 일제히 적진으로 빛을 반사시킴으로써 적군들을 혼란에 몰아넣는 전투 장면도 경우는 다르지만 거울의 원리를 전쟁에 이용한 예다. 결국 다빈치는 거울을 이용한 집광(集光) 화기를 구상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빈치는 그의 유명한 ‘회화론’에서 베네치아의 평면거울을 활용한 회화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회화론’ 가운데 ‘빛과 그림자의 6부’라는 글에서 거울이 지닌 영상적 특징을 3개 항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회화의 기법을 정리한 ‘회화의 실천(장폴리허터 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의 그림이 자기가 드로잉한 대상과 빈틈없이 일치하고 있는가를 살피려면 거울을 가지고 그 안에 있는 실물의 영상을 보고 반사된 영상과 자신의 그림을 잘 비교해 보자. 그리고 이 가지의 모양이 정확하게 조응(照應)하고 있는가의 여부를, 특히 거울 쪽을 찬찬히 살펴가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거울이 윤곽이나 명암에 의해 대상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인즉, 색채에 있어 거울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강렬한 빛과 그림자의 회화 감각을 가지고 있는 자기의 그림을 훌륭하게 구도만 하면 틀림없이 그것은 거울 속에 비치고 있는 자연 속 정경처럼 보일 수가 있을 것이다.”

15세기경에 새롭게 개발된 베네치아의 벽 거울과 손거울, 화장 거울 등 평면거울들은 종래의 침침하고 둔탁한 금속 거울과는 달리 오래 돼도 흐려지는 일이 없고 밝기도 한결 개선됐다. 다빈치는 바로 이러한 평면거울이 있었기에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부유한 사람들이 단지 허영의 도구로 거울을 이용했던 데 반해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거울을 이용했다는 데서 그의 탁월한 면모를 엿보게 된다.


김재규
_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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