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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인의 거울 안나프레즈 베네치안거울
제목 귀부인의 거울 안나프레즈 베네치안거울
작성자 안나프레즈 (ip:221.163.31.240)
  • 작성일 2009-06-15 15: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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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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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인쇄 이메일 뒤로가기 섹션목록 통권목록
황홀한 불(火)의 미학, Glass Art
1. 내추럴 그린의 로만 글라스. 훗날 아트앤드크래프트에도 영향을 줬다.
유리를 통해 보는 르네상스

수천 년 전부터 유리는 항상 그 시대 최고 수준의 기술·예술과 연계돼 새로운 문화를 낳았다. 실제로 기원전 18세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문서에는 놀랍게도 유리의 정량 조합 기술과 발색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후 이집트, 로마와 같은 자료에서 발견되었듯이 르네상스의 융성 속에서도 예의 고도로 숙련된 유리 산업이 있었다. 그 증거로 1540년에 발간된 바노초 비링구초(Vannoccio Biringuccio)의 ‘신호탄에 관하여(De la pirotechnia)’에는 당시 야금술의 상황을 비롯해 유리의 야사와 제조 기법, 유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금속은 아름다움에 있어서 유리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극찬하고 있다.

2. 다빈치가 유리를 사용해 그린 담비를 안은 여인.


베네치아의 유리 거울과 다빈치의 독특한 인연은 기록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그는 명저 ‘회화론(繪畵論)’에서 베네치아 평면거울을 이용한 회화 기법에 대해 여러 곳에서 설명하고 있다. 당시 거울은 귀부인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기호품에 머물렀지만 다빈치는 냉철한 안목으로 기능만을 뽑아내 회화론에 적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을 통해 그 유명한 ‘하얀 담비를 안은 여인’이 탄생됐다. 다빈치는 이 외에도 회화론에서 유리를 통해 실험한 여러 가지 기법들을 소개했다.

3. 방금 출토된 듯한 일회용 로만 글라스들.


15세기께부터 새로 개발된 베네치아의 거울은 당시 유럽의 귀부인들을 열광하게 했다. 종래의 희미했던 금속 거울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평면거울이었다. 이 거울은 벽거울과 화장거울, 손거울 등으로서 당시 그 가치는 최고의 화가의 그림 값보다 비쌌다. 예를 들면 당대의 거장(巨匠)인 라파엘로의 그림의 세 배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유리 거울은 유럽 전역에 상당한 가치로 팔려 나갔다. 이뿐만 아니라 베네치아는 거울 이외에도 다양한 유리 기술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기술 유출을 우려해 모든 직인들을 무라노 섬에 유폐한다. 그 이유는 이웃한 여러 나라들이 이 중대한 기술에 눈독을 들인 때문이었다. 결국 무라노 섬에 유폐한 것도 모자라 어떤 이유에서도 외국인에게 유리 제조 기법을 보여주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했다.

4. 미국의 아르누보 대표 작가인 티파니가 로만 카메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램프로, 100만 달러를 호가한다.


베네치안 글라스와 패송 드 베니스

베네치아 중심에는 산마르코 광장에는 유명한 플로리안 카페가 있으며 건너편 코너에는 매우 큰 규모의 베네치안 글라스 웨어를 전시 판매하는 쇼룸이 호황을 즐기고 있었다. 이 쇼핑 공간에서 유리 거울을 구입하기 위해 멀리 북유럽으로부터 알프스를 넘어 마차를 타고 귀부인들이 모여들었다. 쇼룸에는 이제 막 개발된 크리스탈로라고 불리는 투명한 유리 제품들과 선(線) 가공으로 그려진 레이스 장식의 유리 제품들과 샹들리에 같은 공예품들이 황홀한 미학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취향의 다양한 축제와 파티, 그리고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를 즐기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플로리안 카페에서의 커피 브레이크도 목적 가운데 하나였을 터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면 유럽 전역에서는 무라노 섬에서 도망친 유리 기술자들이 거의 식별하기 어려운 베네치안 글라스를 만들었는데, 이 유리 제품들을 ‘패송 드 베니스’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프랑스어로서 베네치안풍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패송 드 베니스는 현재 앤티크 시장에서 컬렉터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한다. 그 이유는 웬만한 안목으로는 식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매력적인 도시국가로 19세기 초, 나폴레옹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줄곧 아드리해의 여왕 자리를 지켜왔다. 베네치아의 부는 대부분 해외 교역을 통해 창출됐지만 당시 가치로 추산해 볼 때 유리 산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몫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5. 독일의 라인 강변에서 발굴된 로만 유리잔. 신화를 모티브로 제작됐는데 색상의 변화가 독특해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문명과 유리

초기의 유리는 유색 불투명하고 색이 아름다운 보석의 일종, 혹은 그 대용품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장신구나 부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명의 정점에 있었던 이집트에서 유리는 중요한 산업이었다. 아직도 앤티크 시장에서 이집션 글라스가 자주 등장해 컬렉터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집트의 높은 수준으로 볼 때 그들이 유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특히 향수병과 같은 작은 소품으로부터 장식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유리들은 그 색채가 아름다워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이때 만들어진 유리들은 코어 퍼밍(core firming)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고온으로 녹아 있는 유리를 진흙과 같은 봉에 친친 감거나 녹여 붙여 굳은 후에 그 속을 파내는 형태로 제조됐다.

로마에 유리 산업은 일약 넓은 시장을 형성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때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많이 발전됐는데, 특히 블로운(blown) 기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입으로 풍선처럼 아직 굳지 않은 유리를 불어 가공하는 혁신적인 것으로 모양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대량생산의 길을 텄다고 할 수 있다. 로마에서는 또 하나 카메오 기법의 유리도 나타났으며 이 뛰어난 발명들은 인류문화사에 찬연히 빛날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일회용으로도 쓰일 만큼 로마의 귀족들은 유리를 일상적으로 사용했으니 그 많은 유산들은 앤티크 컬렉터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1. 패송 드 베니스 잔. 베네치안 글라스에 정교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일본 하코네 모리, 즉 숲 유리 박물관에 소장된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시대

유리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유리는 이렇게 문명의 중심에서 우리와 밀접하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에서는 유리 컬렉션과 역사에 관한 연구가 부족하다.

특히 이웃한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유리는 다양한 역사적 유산을 품고 있으면서도 현대생활에 필수품으로도 매우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매우 훌륭한 예술적 소재로서도 그 한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파리를 중심으로 나타난 아르누보(Art Nouveau)는 유리 예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낭시파의 거장 에밀 갈레와 돔 형제, 미국의 티파니 등은 중세 고딕 건축에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얻고 유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많은 예술품을 낳았다.

이것들은 현재 매우 훌륭한 컬렉션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경매시장에 등장하면 가격이 경쟁적으로 상승해 램프가 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유리만을 전문으로 다뤄 아르데코 시대를 빛낸 랄리크는 그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했다.

2. 베네치안 글라스. 라티모 글라스의 백색을 차용, 레이스를 사용해 다양한 글라스를 창조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우아하다. 3. 고대 이집션 글라스. 코어 퍼밍의 상징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화려한 색상이 돋보인다. 4. 헝가리의 대표적인 아르누보 작가 졸라이의 가톨릭 수도원 수사의 조각 작품.


김재규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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